오늘도 법원의 문을 열며
오늘도 저는 이혼하기 위해
울산가정법원 제506호 법정의 문을 엽니다.
저의 일상은 헤어지고, 헤어지고, 또 헤어지는 것입니다.
물론 제가 아니라, 제 의뢰인과 배우자가요.
이혼과의 첫 만남
왜 하필 전문분야가 '이혼'이냐고 물으시면,
언제나 저의 답변은 간단했습니다.
"첫 직장이 이혼 전문 로펌이었거든요."
가끔은 중대한 선택이,
그렇게 별 것 아닌 이유로 이루어지기도 합니다.
사실 첫 직장이 이혼 전문 로펌이었던 것도
다른 이유가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사법연수원 수료 후 일산에 계속 살고 싶어서
첫 직장을 연수원 근처에서 구했을 뿐인데,
하필 그 곳이 이혼전문 로펌이었거든요.
이혼과 저의 첫 만남은 그렇게 시작되었습니다.
처음 마주한 이혼의 무게
처음 이혼 사건을 진행할 때에는
법정을 드나들 때마다 마음이 아팠습니다.
한 때는 검은 머리 파뿌리 되도록 함께 하자고 약속했던 이들이,
어쩌다 이렇게 차가운 법정에 서서
서로를 날 선 말로 베고 있을까.
저는 제가 가정의 숨통을 끊는 저승사자,
가족의 사망을 선고하는 의사같다고 생각했습니다.
지겨움과 방황의 시간
변호사 생활 3년차 쯤 되자
이제는 이혼이 지긋지긋했습니다.
질척거리는 감정 싸움이 아닌, 냉철한 법논리로,
변호사다운 준비서면을 쓰고 싶었거든요.
그래서 본의 아니게 방황(?)을 했습니다.
마침 이직 후 두번째 사무실에서 모셨던 대표 변호사님께서
지역주택조합 사건을 제게 일임하시면서 주택법 공부에 매진하기도 했고,
개업 후 우연한 기회가 주어져
스타트업 회사의 법무이사직을 맡기도 했습니다.
스타트업 전문 변호사를 꿈꿔보기도 했지만,
결국 지분 비율을 두고 회사와 이견이 생기면서
저는 다시 송무로 돌아와야 했습니다.
돌고 돌아 다시 이혼으로
내가 가장 익숙하고 잘 하는 송무.
특히 제가 가장 잘하고 많이 했던 일은 결국 이혼이었습니다.
그렇게 저는 이혼으로 다시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부동산과 스타트업을 두루 거친 후 다시 돌아온 이혼은
이전과 사뭇 달랐습니다.
이전에는 듣기 힘들었던
의뢰인의 감정적인 하소연을 가만히 들어보았습니다.
도와달라는 절박한 절규이더군요.
저는 그들의 이야기를 듣기 시작했습니다.
의뢰인들은 모두 최선을 다한 사람이었습니다.
배우자의 부당한 대우를 견디거나,
오랜 갈등 속에서도 가정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한 이들이었지요.
저마다의 방식으로 최선을 다하다가,
도저히 빠져나올 수 없는 수렁에 빠진 순간,
마지막으로 그들은 저를 찾았습니다.
저는 손을 뻗어 그들을 구조하는 일을 했고,
수렁 밖으로 나온 의뢰인들은 고맙다고,
이제는 살 수 있겠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구조대였습니다
저는 더 이상 저승사자도,
죽음을 선고하는 의사도 아니었습니다.
의뢰인들에게 저는 구조대였습니다.
이전에는 왜 미처 알지 못했을까요?
한 사람의 인생을 구하는 일을 반복하면서,
저는 이혼에서 보람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지긋지긋했던 이혼 사건이,
이제는 제가 가장 사랑하는 일이 되었습니다.
이제야 저는 스스로를 자랑스레
이혼 전문 변호사라고 소개합니다.
저는 수렁에 빠진 이들을 구하는 구조대이고,
행복을 가져다주는 배달부입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도 즐거운 마음으로
울산가정법원의 문을 두드립니다.
의뢰인께 더 좋은 미래를 선물하기 위해서요.
그래서 저는,
오늘도 이혼하러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