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 문
이 법원에서 피고(반소원고)가 확장한 청구를 포함하여, 제1심 판결 중 반소 위자료 및 재산 분할 부분을 다음과 같이 변경한다.
가. 원고(반소피고)는 피고(반소원고)에게 위자료로 2,000,000,000원 및 그 중,
100,000,000원에 대하여 2019. 12. 14.부터 2022. 12. 6.까지 연 5%, 그 다음 날부터 다 갚는 날까지는 연 12%의 각 비율로 계산한 돈을,
200,000,000원에 대하여 2019. 12. 14.부터 2024. 5. 30.까지 연 5%, 그 다음 날부터 다 갚는 날까지는 연 12%의 각 비율로 계산한 돈을,
1,700,000,000원에 대하여는 2024. 1. 11.부터 2024. 5. 30.까지 연 5%, 그 다음 날부터 다 갚는 날까지는 연 12%의 각 비율로 계산한 돈을 각 지급하라.
나. 피고(반소원고)의 나머지 반소 위자료 청구를 기각한다.
다. 원고(반소피고)는 피고(반소원고)에게 재산분할로 1,380,817,000원 및 이에 대하여 이 판결 확정일 다음 날부터 다 갚는 날까지 연 5%의 비율로 계산한 돈을 지급하라.
원고(반소피고)의 항소와 피고(반소원고)의 나머지 항소를 모두 기각한다.
소송총비용은 본소와 반소를 통틀어 그 70%는 원고(반소피고)가, 나머지는 피고(반소원고)가 각 부담한다.
1. 가항은 가집행할 수 있다.
이 유
1. 본소 및 반소 각 이혼, 반소 위자료 청구에 대한 판단
가. 인정사실
1) 혼인 및 초기 혼인생활
가) 원고와 피고는 1988. 9. 13. 청와대 영빈관에서 결혼식을 올리고 1989. 4. 15. 혼인신고를 마친 법률상의 부부로서, 슬하에 성년 자녀 3명(최윤정, 최민정, 최인근)을 두었다. 피고는 제13대 대통령 노태우(재임기간 1988. 2. ~ 1993. 2.)의 딸이다.
나) 원고와 피고는 1988. 9. 13. 한국에서 결혼 후 미국으로 돌아가 유학하고, 1989. 최윤정을 출산하였으며, 1990. 12. 2.경 귀국하였다.
다) 원고 모친 박계희는 1997. 6. 18. 심장마비로 사망, 원고 부친 최종현은 폐암 수술 후 1998. 8. 26. 사망하였다. 원고는 1989.경 SK그룹에 입사하여 근무하다가, 최종현 사망 이후 1998. 9.경 현 SK에너지 대표이사 회장에, 2007. 7.경 SK 주식회사 대표이사 회장에 취임 후 현재까지 재직 중이다. 피고는 원고 모친 박계희 사망 이후 박계희가 운영하던 워커힐 미술관 관장직을 맡게 되었고, 2000.경 아트센터 나비로 명칭을 바꾼 후 현재까지 관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2) 원고의 부정행위 등 갈등 발생
가) 원고는 2006.경 김희영을 처음 만났고, 피고는 2007. 8.경 미국 보스턴에서 세 자녀들과 함께 생활하고 있었는데, 당시 미국 뉴욕에서 머물고 있던 원고는 큰딸 최윤정의 생일인 2007. 8. 8. 보스턴 집을 찾아와 이혼을 요구하였다.
나) 김희영은 미국 뉴저지 법원에 전남편을 상대로 이혼 소송을 제기하여 2008. 11. 18. 위 법원에서 이혼 판결을 받았다.
다) 원고와 김희영은 늦어도 2009. 초경에는 이미 부정행위를 하는 관계에 있었고, 김희영은 원고와 사이에 2010. 최OO을 출산하였다. 이후 원고는 2016. 최OO에 대하여 인지 신고를 하였다. 원고는 2011. 7.경 홍콩에 있는 호텔에서 김희영과 김희영의 부모, 최OO와 함께 시간을 보냈다. 당시 피고는 원고의 디지털 카메라에서 원고, 김희영, 최OO, 김희영의 부모가 함께 찍은 사진을 보고 누구냐고 물었고, 원고는 ‘어떤 여자와 그 여자의 아이’라는 식으로 부정행위와 혼외자의 존재를 부인하였다.
라) 원고는 2009.경 침실을 1층 서재로 옮기게 되면서 2층 침실을 사용하는 피고와 각방 생활을 하였고, 2011. 9. 11. 일방적으로 가출하여 회사, 사옥, 집무실 등에서 숙식하면서 피고와 별거하였다.
3) 원고의 부정행위 공개 과정 및 그 이후의 경과
가) 원고는 2013. 11. 24. 구속된 상태에서 피고에게 자필 편지를 보냈고, 2014. 1. 7. 자녀들에게도 김희영과 혼외자의 존재를 공개하는 자필 편지를 보냈다. 원고가 2015. 8. 14. 광복적 특사로 석방된 이후에도 피고와 별거 상태를 유지하였다.
나) 원고는 피고의 동의 없이 2015. 12. 29.경 세계일보에 ‘내연녀와 혼외자가 있고 피고와의 혼인관계를 지속할 수 없다’는 내용이 담긴 편지를 보내 이를 언론에 공개하였다. 이후 원고는 2017. 7. 19. 서울 가정법원에 이혼 조정 신청을 하였으나 조정이 성립하지 않았다.
다) 한편 원고는 2018. 1. 4.경 상당한 규모의 돈을 출연하여 김희영과 함께 재단법인 티앤씨재단을 설립하고, 김희영은 위 재단 이사장에 취임하였다. 원고는 2019. 5. 28. 열린 소셜밸류 커낵트 2019행사에 김희영과 동반 참석하는 등 김희영과 공개활동을 시작하였고, 위 행사에서 원고는 ‘김희영으로 인하여 원고가 비로소 사회적 가치를 추구하게 되었다’는 취지의 발언을 하였다.
라) 피고는 원고의 이혼조정 신청에 대하여 이혼의사가 없다는 입장을 취해오다가, 제1심 소송 진행 중이던 2019. 12. 4.에 이르러 원고를 상대로 이혼, 위자료 및 재산 분할을 구하는 반소를 제기하였다. 이후 피고는 이 사건 소송 계속 중이던 2020. 5. 14. 원고 소유 SK 주식에 대하여 이혼에 따른 재산분할청구권을 피보전권리로 한 처분금지가처분을 신청하여, 2022. 2. 17. 위 주식중 350만 주에 대하여 처분금지가처분 결정을 받았다.
나. 판단
1) 반소 이혼 청구 : 인용 (민법 제840조 제1호 및 제6호)
2) 반소 위자료 청구 일부 인용 (20억 원)
3) 본소 이혼 청구 : 기각 (유책배우자의 청구이므로)
4) 판단근거
가) 혼인관계의 파탄 인정
원고와 피고가 이혼을 원하고 있는 점, 원고와 피고의 갈등이 심화되었고 2011. 9 .11.부터 현재까지 장기간 별거하면서 화합하지 못하고 있는 점, 서로에 대한 애정과 신뢰를 상실하여 혼인생활을 지속할 가능성이 없어 보이는 점 등, 혼인관계가 회복될 수 없을 정도로 파탄되었다고 인정된다.
나) 혼인관계 파탄의 주요 책임은 원고
원고가 2013. 11. 24. 피고에게 보낸 편지 내용(김희영이 전남편과 혼인관계 유지 중인 상황에서, 원고가 김희영을 이혼시키고 혼외자까지 낳도록 시키는 등의 행위를 계획적으로 실행하였다는 취지)은 원고와 피고의 혼인관계 유지, 존속을 좌우할 수 있을 정도의 중대하고도 결정적인 사정이고, 이는 부부간의 신뢰관계를 크게 훼손시킬 수 있는 내용이라는 점이 명백하다.
또한 원고는 편지를 별다른 생각 없이 혹은 무심코 작성한 것이 아니라, 피고와 자녀들에게 김희영과 혼외자의 존재에 관하여 어떻게 설명할 지 상당히 고민한 다음, 1차적으로 피고에게 편지를 송부하고, 한달 반 정도 후에 자녀들에게 2차적으로 편지를 송부한 것으로 판단된다.
또한 원고는 편지에서 자신과 김희영의 관계를 공개하고 김희영과 함께 살기로 결정하는 이유 등을 종교적인 신앙 내지 신념 등에 기대어 설명하기도 하였다(기독교 신자인 원고가 위와 같은 형식과 내용으로 편지를 송부한 것은 그 기재 내용이 진실된 것이라는 점에 대하여 매우 높은 수준의 신뢰성을 보장한다는 취지로 볼 수 밖에 없다).
따라서 위 편지의 내용은 상당히 신빙성이 높다고 볼 수 있고, 편지 내용에 따라 원고는 2008. 6.경 원고의 계획에 따라 김희영이 이혼하였고, 그 이전부터 김희영과 이미 부정행위를 시작하였을 가능성이 높다.
👉 원고는 김희영의 이혼에 개입한 바 없고, 2009. 초경부터 연인 관계가 되었다고 주장하나, 이는 명백한 거짓말에 해당한다고 판단.
👉 오변 해설 : 판결문에는 원고 주장 신빙성을 판단하는 부분이 상세히 기술되어 있는데, 원고 주장이 사실이라면 원고가 옥중에서 피고와 자녀들에게 보낸 편지의 내용이 모두 거짓이라는 것이 되고, 이러한 명백한 허위 내용이 자녀들에게 전달되도록 사전에 계획하여 이를 실행하였다는 것으로 말이 안된다고 판단.
다) 혼인파탄에 관한 원고 주장에 대한 판단
(1) 원고 주장의 요지
원·피고의 돈과 권력에 대한 가치관의 차이, 피고의 우월의식과 자기중심적 행동방식, 피고의 이중적 태도 등으로 인하여 이미 2005.경 내지 2007.경에는 파탄되었으므로, 원고가 혼인파탄 이후 시점인 2009.초경 김희영과 연인관계가 된 것과 혼인관계 파탄 사이에는 인과관계가 없다.
또한 피고가 2011.경 청와대에 원고와 관련된 수사청탁을 하였기 때문에 원고가 횡령 혐의로 형사처벌을 받게 되었고, 피고는 2014.경 내지 2015.경 청와대에 원고의 사면을 반대하는 청탁을 하였으며, 2016.경 김희영에 대한 악의적인 허위 댓글공작을 사주 내지 방조하였다.
따라서 혼인관계 파탄의 책임은 원·피고 모두에게 있고, 설령 주된 책임이 원고에게 있다고 보더라도, 위와 같은 사정 등을 고려하여 본소 이혼청구가 인용되어야 한다(민법 제840조 제3호 및 제6호).
(2) 구체적 판단
원고가 2007. 8. 8.경 피고와 자녀들 앞에서 이혼을 요구하기 전까지 혼인 파탄에 이를 정도의 갈등이 있었다고 보기에는 어려운 점, 김희영이 2011. 11. 18. 이혼을 원하지 않는다고 피고에게 보낸 편지, 김희영의 상간소송 제기 시점인 2008. 6.경 이전부터 원고와 김희영의 부정행위가 시작되었을 것이라는 점, 원고는 2013. 9. 11. 집에서 나간 이후에도 자녀들과 녹음 등을 위하여 거의 매일 지속적으로 상의한 점, 피고는 원고 집안의 며느리로서 2017. 12. 원고 고모의 생일, 2018. 5. 원고 작은아버지의 팔순 잔치 등 원고 집안의 행사에도 빠짐 없이 참석한 점, 피고는 원고가 이 사건 이혼조정신청을 한 이후인 2018년 설에도 원고 부모의 차례를 마친 다음, 원고와 함께 원고의 큰집으로 가서 시가 친척들에게 세배하고 문안인사를 한 점, 원고와 피고가 2005.경 이후에도 함께 해외여행을 다녀오거나 상당 기간 성경공부를 함께 한 점 등에 비추어 보면, 원고의 부정행위가 있기 전인 2005.경 내지 2007.경 이미 원·피고의 혼인 관계가 파탄 상태에 있었다고 인정하기에 부족하고, 달리 이를 인정할 증거가 없으며, 원·피고의 혼인 관계는 원고와 김희영의 부정행위와 혼외자 출산 및 그 이후에도 계속 이어진 부적절한 관계 등으로 인하여 결국 파탄에 이른 것으로 봄이 타당하다.
또한 원고가 주장하는 바와 같이, 피고가 원고의 유죄 판결 확정 이후 원고의 수감기간 동안 2015.경 청와대에 원고의 사면을 반대하는 취지를 전달했다고 볼 여지는 있으나, 피고 측이 이러한 행위를 했다고 하더라도 이는 원고가 피고 및 자녀들에게 자신의 부정행위 및 혼외자의 존재를 밝힌 시점보다 현저하게 나중에 발생한 것으로서 오히려 피고에게 성실하였던 원·피고 혼인관계 파탄에 있어 원고의 부정행위 등보다 더 주요한 원인이라고 볼 수는 없다.
따라서 이와 다른 전제에 기초한 원고의 주장은 모두 받아들이지 않는다.
(3) 반소 위자료 지급 의무 및 액수
원고는 혼인관계 파탄에 따라 피고가 입은 정신적 고통에 대하여 위자료를 지급할 의무가 있다. 한편 유책 배우자에 대한 위자료 수액을 산정함에 있어서도, 유책 행위에 이른 경위와 정도, 혼인 관계 파탄의 원인과 책임, 배우자의 연령과 재산 상태 등 변론에 나타나는 모든 사정을 참작하여 법원이 직권으로 정하는 것이다(대법원 2004. 7. 9. 선고 2003므2251, 2268 판결 등). 이 사건 변론에 드러난 여러 사정을 종합하면, 원고가 피고에게 지급하여야 하는 위자료 액수는 20억 원으로 정함이 타당하다.
(가) 원고는 혼인 기간 도중 김희영과 부정한 관계를 형성하였고, 김희영과 사이에 혼외자를 낳은 이후 일방적으로 가출하여 현재까지 십 수 년 이상 사실혼과 유사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나) 피고는 2009. 5. 8. 유방암 판정을 받고 근치적 절제를 받은 후 상당 기간 육체적·정신적으로 힘든 시간을 보내야 했는데, 원고는 그 시기에 김희영과 부정행위를 하고 혼외자까지 낳았으므로, 이는 피고에게 적지 않은 정신적 충격을 주었을 것으로 판단된다.
(다) 원고는 피고 및 자녀들에게 김희영의 이혼 과정 관여 등에 관하여 명백한 거짓말을 하였거나, 혹은 이 사건 소송 과정 및 서울중앙지방법원 2017가단7789 사건의 증인신문 과정에서 의도적·계획적으로 명백한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판단되는 바, 위와 같은 원고의 태도는 피고에게 상당한 정신적 고통을 주었을 것으로 봄이 타당하다.
(라) 원고는 일방적으로 세계일보에 ‘내연녀와 혼외자가 있고, 피고와의 혼인관계를 지속할 수 없다’는 내용이 담긴 편지를 보내 이와 같은 사실을 언론에 공개한 이후, 혼인관계가 완전히 해소되지 아니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김희영과 함께 재단을 설립하였고, 현재까지 김희영과 공개적인 활동을 지속함으로써 마치 김희영이 배우자와 유사한 지위에 있는 것과 같은 태도를 보이고 있다. 원고는 상당한 기간 동안 김희영과 부정행위를 지속하며 이를 공식화하는 등 정신적·육체적 일 측면에서 우리 헌법이 특별히 보호하고 있는 혼인의 순결과 일부일처제 등을 전혀 존중하지 않는 태도를 보였다. 그렇다면 원고는 최소한 십 수 년 동안 위와 같은 행위 및 태도를 통하여 피고의 배우자로서의 권리를 현저하게 침해하였다고 보아야 하므로, 위 기간 동안 지속적으로 이루어진 원고의 고의적인 유책행위로 인하여 피고에게 발생한 정신적 손해를 전보할 수 있는 배상 의무를 져야 한다.
(마) 원고는 자신의 지속적인 부정행위에 대해 피고에게 진심으로 사과하거나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오히려 이혼 조정신청 이후 계속하여 ‘피고의 자기중심적 행동방식, 이중적 태도 등으로 인하여 혼인관계는 이미 파탄되었으므로, 원고의 부정행위가 혼인 관계 파탄의 원인이 될 수 없다’고 주장하거나, 피고가 원고에 대한 일련의 보복행위를 하였다고 주장하고 있다.
(바) 부부간 부양 의무는 혼인 관계의 본질적 의무로서 부양의무자는 부양의무자의 생활과 같은 정도로 보장하여 부부공동생활의 유지를 가능하게 하는 것이고, 따라서 혼인이 사실상 파탄 되어 부부가 별거 하면서 서로 이혼소송을 제기하는 경우라고 하더라도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이혼을 명한 판결이 확정 등으로 법률상 혼인관계가 완전히 해소될 때까지는 부부간 부양 의무가 소멸하지 않는 것이라고 할 것이다(대법원 2003. 3. 24. 선고 2003므1436 판결 등 참조). 그리고 부부간 부양의무에 따른 부양의 정도는 부양을 청구하는 당사자의 사정(부양의 필요성 등), 부양의무자의 사정(부양능력 등), 부양이 필요하게 된 사정 등을 모두 고려하여 정하여야 하므로, 결국 부양의 정도는 당사자 쌍방의 재산상태와 수입액, 생활 정도 및 경제적 능력, 사회적 지위 등에 따라 부양이 필요한 정도, 그에 따른 부양의무 이행 정도, 혼인생활 파탄의 경위와 정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판단하여야 한다(대법원 2012. 12. 27. 선고 2011므9693 판결).
원고는 이 사건 이혼조정 신청 이후에 상당한 기간 동안 피고에 대하여 매월 현금 2,000만 원, 신용카드 대금 매월 약 5,000만 원, 빌라 임차료로 매월 약 6,000만 원 등의 경제적 지원을 한 것으로 보이기는 한다. 그러나 원고는 2019. 2. 20. 카드 사용을 일방적으로 정지시키고, 피고의 거주지를 관리하던 직원 및 운전기사에 대한 지원을 중단하였으며, 2023. 3. 31.자 원고의 빌라 임대차계약을 종료시킨 다음, 2023. 4. 1. 이후에는 피고로 하여금 빌라에 관하여 직접 임대차계약을 체결하고 임차료를 지급하도록 하였으며, 매월 현금 2,000만 원의 지급도 중단하였다.
그런데 항소심 판결 별지 재산분할명세표에 의한 원고의 순재산은 3,988,300,000,000원에 달하고, 2011. 9. 11. 가출 이후 현재까지 김희영 등에 대한 생활비 등으로 상당한 비용을 지출하며 생활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바, 원고가 ‘피고의 생활을 배우자인 원고의 생활과 같은 정도로 보장하는 방법’으로 피고에 대하여 부부간 부양의무를 충실히 이행하였다고 보기 어렵다.
(사) 피고는 원고의 모친 박계희가 사망한 이후 박계희가 운영하던 미술관의 관장직을 이어받아 아트센터 나비로 명칭을 바꾼 후 현재까지 관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아트센터 나비는 2000년부터 SK사옥 빌딩을 전차하여 사용하고 있었으며, SK그룹으로부터 운영자금을 지원받았다. 그러나 원고가 이 사건 이혼조정신청 이후 SK이노베이션은 2019. 9. 26.부터 아트센터 나비와 전대차 계약을 해지한다는 통보를 하고 퇴거할 것을 요구하였고, 최근 SK이노베이션은 아트센터 나비의 주요 교부금 제공을 폐지하였다. 원고가 SK그룹의 지주회사인 SK주식회사의 대표이사로 재직 중인 점을 종합하여 보면 위와 같은 사정들은 원·피고의 혼인관계가 완전히 해소되지 아니하였음에도 불구하고, 피고가 원고의 모친으로부터 승계한 아트센터 나비 관장으로서의 사회적 지위를 위태롭게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반면에, 원고가 이 사건 이혼 소송을 계속 중인 2018. 1. 4.경 상당한 규모의 돈을 출연하여 김희영과 함께 재단을 설립한 다음, 김희영이 E안네재단 이사장으로 취임하였음을 앞서 본 바와 같다. 이러한 원고의 태도 역시 피고에게 상당한 정신적 고통을 주었을 것으로 판단된다.
(아) 한편, 원고는 별지 분할재산명세표 기재와 같이 2011. 9. 11. 피고와 별거한 이후 김희영과의 생활비, 최○○의 학비, 재단 출연금, 김희영 가족에 대한 대여금 등 김희영과의 관계를 계속 유지하기 위해서나 김희영과 관련하여 합계 약 219억 원을 지출하였고, 그 외에도 원고 명의의 은행 계좌 등을 이용하여 김희영과 관련하여 상당한 금원을 소비한 것으로 판단된다. 위와 같은 원고의 경제 수준, 소비 성향, 부부공동재산의 유출 등을 이 사건 소송의 반소 재산분할 부분에서는 물론, 혼인 관계의 파탄으로 피고가 입은 정신적 고통에 대한 손해배상액을 산정함에 있어서도 고려하여야 한다.
다. 소결론
1) 반소에 의하여, 원고와 피고는 이혼한다.
2) 원고는 피고에게 위자료로 2,000,000,000원 및 그 중
100,000,000원에 대하여 2019. 12. 14.부터(반소장 부본 송달 다음날) 2022. 12. 6.까지(1심 판결 선고일) 연 5%, 그 다음 날부터 다 갚는 날까지는 연 12%의 각 비율로 계산한 돈을, → 1심에서 청구/1심에서 인정된 금액
200,000,000원에 대하여 2019. 12. 14.부터 2024. 5. 30.까지(항소심 판결 선고일) 연 5%, 그 다음 날부터 다 갚는 날까지는 연 12%의 각 비율로 계산한 돈을, → 1심에서 청구/항소심에서 인정된 금액
1,700,000,000원에 대하여는 2024. 1. 11.부터(반소 항소취지 및 항소이유 법정신청서 부본 송달 다음날) 2024. 5. 30.까지 연 5%, 그 다음 날부터 다 갚는 날까지는 연 12%의 각 비율로 계산한 돈을 각 지급하라. → 항소심에서 청구 확장/항소심에서 인정된 금액
3) 원고의 본소 이혼 청구와 피고의 나머지 반소 위자료 청구는 이유 없어 이를 각 기각한다.
2. 반소 재산분할 청구에 관한 판단
가. 재산형성의 경위 및 과정
1) 원·피고의 재산형성
가) 원고는 피고와 혼인 당시 보유하고 있던 재산이 많지는 않았으나, 1989. 5. 1.경 SK그룹에 입사하여 근무하기 시작한 이후, 2012. 2. SK하이닉스의 대표이사로 각 재직하면서까지 상당한 규모의 보수를 받는 등 다양한 방법으로 원고 명의의 재산을 형성하였다.
나) 피고는 원고와 마찬가지로 혼인 당시 보유하고 있던 재산이 많지는 않았으나, 혼인기간 중 원고로부터 받은 생활비, 아르바이트 내지 보너스 등의 수입 등 다양한 방법으로 피고 명의의 주식, 예금, 부동산 등의 재산을 보유하게 되었다.
다) 원·피고는 혼인 초기 원·피고의 재산을 구분하지 않고, 혼합하여 사용하였다.
라) 한편, 최종현이 1989. 11. 21.부터 1994. 11. 21.까지 원고에게 수차례에 걸쳐 현금 2,901,361,200원을 증여하였다는 부분에 관하여 원고는 과세 관청에 증여세 신고를 하였고, 최종현은 그 외에도 1994년 내지 1995년경 월드빌라트 매수 자금을 지원해 주었다(이에 관하여는 원고가 증여세 신고를 하지는 않았는데, 다만 위 월드빌라트의 정확한 매매금액이 10억 3,000만 원인지 14억 원인지에 관하여는 원·피고 사이에 다툼이 있다).
2) SK그룹의 변천과 원·피고의 재산형성 과정
가) SK그룹의 형성과 변천 및 이동통신 사업 진출
(1) SK그룹은 최종건이 1953년 창업한 선경직물을 기초로 해서 형성된 기업집단으로서, 1973년 최종건이 사망하자 동생인 최종현이 그룹 총수 지위를 승계하였고, 최종현은 1980년에는 대한석유공사를, 1994년에는 당시 제1이동통신이었던 한국이동통신을 인수하여 그룹의 사세를 확장하였다.
(2) 원고는 1990년 내지 1991년경 청와대에서 노태우에게 무선이동통신을 시연하였고, 그 이후 노태우 정부는 1991년경부터 제2이동통신 사업자 선정을 추진하였다. 그 과정에서 1991. 8. 10. 노태우 정부가 발의한 공중전기통신사업법개정법률안을 토대로 공중전기통신사업법이 전기통신사업법으로 전부개정되었다. 위 전기통신사업법은 당시 통신설비를 제조하고 있던 대기업(삼성, 현대, 대우, LG)에 대하여 특정통신사업의 수허가권자 자격을 제한하였고, 한국이동통신의 민영화를 예정하였다. 위와 같은 법률 규정 및 이에 따른 규제 내용 등은 노태우의 대통령 임기가 끝난 이후에도 선경그룹이 1994년 제1 이동통신이었던 한국이동통신을 인수할 당시까지 그대로 존속되었다. 1980. 11.경 선경그룹이 대한석유공사를 인수한 이후 1982. 7.경 사명을 ‘주식회사 유공’으로 바꾸었고, 유공은 선경그룹의 대표회사로서 그룹 내 투자 또는 계열사 증자 등에 적극 참여하였으며, 1994년에는 한국이동통신을 인수하는 데 필요한 많은 자금을 마련하여 한국이동통신의 최대주주가 되었다.
(3) 선경그룹은 제2이동통신 사업자 선정이 가시화될 무렵, 위 사업의 수주 및 영위를 위해 1991. 4. 13. 선경텔레콤 주식회사를 설립하였고, 세 차례에 걸친 유상증자를 통하여 주식회사 유공(이하 ‘유공’이라고 한다)이 70억 원(주당 1만 원, 70만 주)을, 선경건설 주식회사(이하 ‘선경건설’이라고 한다)가 30억 원(주당 1만 원, 30만 주)을 각 출자하였다.54) 선경텔레콤 주식회사는 1992. 5. 30.경 대한텔레콤 주식회사(이하 ‘대한텔레콤’이라고 한다)로 사명을 변경하였다.
(4) 대한텔레콤은 피고의 부친인 노태우의 대통령 재임 당시인 1992. 8. 20. 제2이동통신 사업자로 선정되었다가, 당시 대통령과의 관계 등으로 논란이 일자 선정된 지 일주일 만에 제2이동통신 사업권을 반납하였다.
(5) 선경그룹은 유공, 흥국상사, 선경인더스트리 등 계열사를 통해 김영삼 전 대통령 재임 당시인 1994. 1.경 공개 입찰절차에서 한국이동통신(제1이동통신) 주식 23%를 인수하였고, 1994. 7. 7. 한국이동통신의 임시주주총회를 통해 선경그룹 임원들을 이사로 선임하게 하면서 한국이동통신의 경영권을 인수하였다. 한국이동통신은 1997. 3.경 SK텔레콤으로 사명을 변경하였다.
(6) 유공은 1997. 10. 1. SK주식회사(이하 ‘SK(구 유공)’이라고 한다)로 사명을 변경하였다.
나) 최종현이 1998. 8. 26. 사망하기 전 원고의 대한텔레콤 주식 인수 및 대한텔레콤의 변천 등
(1) 원고는 선경그룹이 위 가)의 (5)항 기재와 같이 1994. 1.경 한국이동통신의 주식 23%를 인수하고, 1994. 7.경 한국이동통신의 경영권을 인수한 이후인 1994. 11. 21. 유공으로부터 대한텔레콤 주식 70만 주(주당 400원, 가액 2억 8,000만 원)를 인수하였고, 61) 이에 따라 매각 대금은 1995. 7.경 선경건설로부터 대한텔레콤 주식 30만 주(주당 400원, 가액 1억 2,000만 원)를 인수하였다.
(2) 원고는 1995. 12. 30.경부터 대한텔레콤에서 이사로 재직하였다.
(3) 대한텔레콤이 SK그룹 계열사인 SK텔레콤과의 거래 등을 통해 특혜를 받고 있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논란이 일자, 원고와 김준일은 위 논란에 대한 대응 차원에서 1998. 5. 13. 대한텔레콤 주식 30만 주(원고 21만 주, 김준일 9만 주)를 SK텔레콤에 58) 무상증여하였고(당시 가액은 주당 50,000원으로 평가되었다), 그 결과 1998. 5.경 대한텔레콤의 지분 구조는 원고 49%, SK텔레콤 30%, 김준일 21%가 되었다. 한편, 김준일은 2000년경 원고의 여동생 최기원과 이혼하는 과정에서 자신이 부유하고 있던 SK C&C 주식 210,000주(아래에서 살펴보는 바와 같이 대한텔레콤은 1998. 12. 1. 사명을 SK C&C로 변경하였다) 중 50%인 105,000주를 SK에너지판매에 주당 173,000원, 합계 18,165,000,000원(= 105,000주 × 173,000원)에 매각하여 그 대금을 자신이 취득하였고, 나머지 50%인 105,000주는 최기원에게 이혼에 따른 재산분할로 이전하였다.
(4) 한편, 유공의 정보통신사업부에서 독립하여 1990. 10.경 설립된 회사인 주식회사 아이씨앤씨는 1996. 5.경~1996. 6.경 12개 SK그룹사의 전산조직과 인력들을 모두 통합하고, 1996. 7. 9. SK컴퓨터통신 주식회사로 사명을 변경하였다. SK컴퓨터통신은 1996. 12. 31. 계열사인 선경정보시스템 주식회사를 흡수합병하였고, 이후 SK그룹 내 전산 시스템 통합구축 및 운용·유지 업무 등을 전담하였다.
(5) 대한텔레콤은 1998. 9.경 SK(구 유공)로부터 SK컴퓨터통신 주식 100%를 인수하였고, 1998. 12. 1. SK컴퓨터통신을 흡수합병하면서 사명을 SK C&C 주식회사(이하 ‘SK C&C’라고 한다)로 변경하였다.67)
다) 최종현의 사망 이후 원고의 SK그룹 경영권 승계와 지주회사 체제로의 전환 등
(1) 최종현이 1998. 8. 26. 사망하자, 당시 SK그룹 경영에 참여 중이던 원고와 원고의 사촌 형제 등 5인[故 최윤원, 최신원, 최창원(이상 창업주인 故 최종건의 아들들), 원고, 최재원(故 최종현의 둘째 아들이자 원고의 동생)]은 1998. 8. 28.자 합의서를 작성한 다음 원고를 SK그룹 및 Family 대표로 추대하였고, 원고의 동생들이자 공동상속인인 최재원, 최기원은 상속재산협의분할을 통하여 최종현이 보유하고 있던 SK그룹 계열사들의 주식 대부분을 원고가 상속받을 수 있게 하였다. 원고는 1998. 9. 1. 최종현의 뒤를 이어 SK(구 유공) 대표이사 회장에 취임하였다.
(2) 한편, 최종현은 과거 SK그룹 회장 시절 경영실적, 재무구조가 우량하지 못한 일부 계열사(SK글로벌, SK건설, SK유통 등)의 은행 차입금에 대하여 그룹 총수로서 개인적으로 연대보증을 하였는데, 원고가 SK(구 유공) 대표이사 회장에 취임한 후 원고 역시 채권자 은행들의 요구에 따라 총 6조 8,000억 원의 해당 계열사 채무에 대한 연대보증을 하였다(이러한 원고의 연대보증은 2003년 SK글로벌 사태를 맞으면서 원고가 보유하고 있던 모든 주식에 대하여 채권단이 사실상 압류를 하는 원인이 되기도 하였다).
(3) SK C&C는 원고가 SK(구 유공) 대표이사 회장에 취임한 이후인 1998. 12. 8. 당시 SK그룹의 사실상 지주회사 역할을 하던 SK(구 유공)가 발행하는 1,400억 원 규모의 전환사채를 취득하였고, 2000. 12. 12. 위 전환사채의 전환권을 행사하여 SK(구 유공) 주식 11,054,958주(지분율 8.57%)를 취득함으로써 SK(구 유공)의 2대 주주가 되었다.
(4) SK C&C는 2001년 당시 SK(구 유공)의 1대 주주이던 SK글로벌(구 SK상사, 이후 SK네트웍스로 상호변경)이 매각하는 SK(구 유공)의 주식 일부를 인수함으로써, 2001. 1. 29. SK(구 유공)의 최대주주(지분율 10.83%) 지위에 올랐다.
(5) SK(구 유공)은 2007. 7.경 SK주식회사(이하 ‘구 SK’라 한다)를 존속회사로, SK에너지 주식회사(현 SK이노베이션 주식회사)를 신설회사로 하는 인적분할을 단행하였고, 구 SK는 SK그룹의 지주회사 역할을 하게 되었다. SK C&C는 위 인적분할 이후 2009. 1.경까지 구 SK 주식을 구 SK와 현물교환하거나 추가로 매수하는 방법으로 구 SK 주식을 취득하여 구 SK의 최대주주(지분율 31.82%) 지위에 오름과 동시에 지주회사인 구 SK를 지배하게 되었다. ) 이로써 SK C&C가 구 SK를 지배하고, 구 SK가 SK에너지 주식회사(현 SK이노베이션 주식회사), SK텔레콤 주식회사, SK네트웍스 주식회사, SKC 주식회사, SK E&S 주식회사 등 주요 계열사를 지배하는 그룹 지배구조가 형성되었다.
(6) SK C&C는 2015. 8. 1. 구 SK를 흡수합병한 후 사명을 SK주식회사로 변경함으로써 SK주식회사가 SK그룹의 계열사를 지배하는 현재의 지주회사 체제로 변화하였다.
나. 재산분할의 기준시점
재판상 이혼에 따른 재산분할에 있어 분할의 대상이 되는 재산과 그 액수는 이혼소송의 사실심 변론종결일을 기준으로 하여 정하는 것이 원칙이지만(대법원 2000. 5. 2.자 2000스13 결정 참조), 혼인관계가 파탄된 이후 변론종결일 사이에 생긴 재산관계의 변동이 부부 중 일방에 의한 후발적 사정에 의한 것으로서 혼인 중 공동으로 형성한 재산관계와 무관하다는 등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에는 그 변동된 재산은 재산분할 대상에서 제외하여야 한다(대법원 2013. 11. 28. 선고 2013므1455, 1462 판결 참조).
위와 같은 법리에 따라 이 사건 변론종결일을 기준으로 재산분할의 대상 및 가액을 정하되, 금전과 같이 소비나 은닉이 용이하고 기준시점을 달리할 경우 중복산입의 우려가 있는 경우에는 원칙적으로 혼인관계가 파탄되었다고 볼 수 있는 이 사건 반소 제기일인 2019. 12. 4.을 기준으로, 당시 보유하고 있던 금원이 부부공동생활에 사용되었다는 점에 관한 당사자의 명확한 입증이 없는 한 이를 그대로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하기로 하고, 원고와 피고가 각자 보유하고 있는 금융자산 역시 제출된 자료 중 2019. 12. 4.에 가장 가까운 시점을 기준으로 평가하기로 한다. 다만 원고와 피고가 일치하여 그 가액을 진술하거나 제출된 서증, 금융거래정보 제출명령 회신결과, 재산목록 등에 나타난 가액에 관하여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 경우에는 그에 따라 가액을 정한다.
그러나 앞서 제1.의 나. 4) 다) (2)항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① 원고와 피고는 2011. 9. 11. 원고의 일방적인 가출로 인하여 별거가 시작되었지만, ② 원고의 일방적 가출 이후에도 원고와 피고가 자녀 문제나 친족관계에 관하여 지속적으로 상의를 하였던 점, ③ 피고는 원고의 이 사건 이혼소송 제기 시까지 이혼 의사가 없음을 피력하면서 원고의 가족 행사에 참여하기도 한 점 등 이 사건 제반 사정에 비추어 볼 때, 이 사건 반소 제기 전 원고와 피고의 혼인관계를 두고 그 실체가 완전히 해소되어 원고와 피고 각자의 독립적인 생활관계가 완전히 고착화되기에 이르렀다고 보기 어려우므로(대법원 2012. 1. 27. 선고 2011므3600 판결 등 참조), 이와 다른 전제에 기초한 원고의 위 주장은 받아들이지 아니한다.
다. 분할대상 재산 및 가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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